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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교 이야기
글쓰기는 쉽지 않다. 필요한 컨텐츠를 검색하고 소비하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다 보니,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이를 명료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글쓰기는 점차 귀찮고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영상과 이미지, 짧은 글로 빠르게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긴 글을 쓰는 일이란 지루한 수업을 듣는 일보다 고역일지도 모른다. 이 괴로운 일을 산학교 중등과정 학생들은 매일, 매 학기마다 하고 있다. 매일 자기 생활과 배움 내용을 기록하고, 학기가 끝나면 이 기록을 바탕으로 평가서를 작성한다. 산학교 학생들이 모두 글쓰기를 좋아할 리는 물론 없고, 간혹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조차도 나를 돌아보고 글로 정리해야 하는 이 과제를 즐거워하진 않는다. 다만 괴로움에 그치지 않고 이 과정에서 각자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글쓰기 과제 중 학생들이 가장 정성을 들이는 건 인터뷰 에세이다. 인터뷰 에세이란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을 말한다. 상반기, 하반기 각각 한편씩 쓰고, 7,8,9학년 학생, 교사 모두가 함께 모여 글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학생들은 인터뷰 에세이를 위해 마감 3주 전부터 고민을 시작한다. 매일 작성한 생활과 배움 기록을 읽어보고 에세이 주제와 인터뷰 대상자, 인터뷰 질문을 정한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 내가 가장 노력한 점, 달라진 점, 요즘 나의 고민 등을 생각해보면서 주제를 충분히 탐색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각자 의미있는 주제와 질문을 정할 수 있도록 개별 면담을 하며 도움을 준다. 주제와 질문이 솔직하고 구체적일수록 진심이 담긴 글이 나올 수 있기에, 인터뷰를 하기 전 충분히 자기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7~9학년 학생들의 인터뷰에세이 글 나눔 장면.
주제와 질문이 완성되면 각자 정한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고 약속을 잡아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 대상은 가족, 친구, 교사로 대부분 편하고 익숙한 관계이지만, 장난스럽지 않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절차와 태도를 갖출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인터뷰 에세이를 처음 쓰는 학생들에게는 이 또한 긴장되는 순간이다. 인터뷰 과정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생각한 자기 모습에 대해 듣게 되는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나는 답변을 듣는 것이 조금은 쑥스럽지만 좋기도 한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의 답변을 통해 자기 모습을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보고 고민하는 기회가 된다. 그렇기에 답변자의 역할을 할 때에는 상대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성껏 임해야 한다. 교사로서는 이 시간이 평소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잔소리가 아닌 방식으로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인터뷰를 모두 마치면, 이를 토대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질문과 답변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해준 답변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총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담을 것인지 구상하고, 이를 토대로 초안을 작성하면,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서로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글다듬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교사는 보다 진솔하고 정돈된 글을 쓸 수 있도록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여러 차례의 퇴고를 거듭하여 마침내 에세이가 완성되면, 학기 마무리를 함께 축하하는 자리에서 발표한다. 이미 여러번 읽어본 글인데도 학생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을 다해 낭송했을 때 새로운 감동과 울림이 있다. 에세이 낭송 후에 발표에 대한 소감이나 질문 시간을 갖는데, 한 사람의 성장을 축하하는 따뜻한 격려의 말들이 오간다. 쉽지 않은 과정을 해내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이 순간 때문에 학생들이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인터뷰 에세이를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김없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생들 각각이 정성껏 써 내려갈 이야기가 벌써 기대가 된다.
아산 느릅실 이동학습 때 쓴 에세이 발표 장면
“에세이를 막 쓰기 시작했을 땐 쓰기 싫었다. 그래도 나의 생각도 조금씩 쓰다 보니 어느새 처음보단 덜 쓰기 싫어졌다. 덜 쓰기 싫어진 순간부터는 나의 생각을 써나가면 된다는 생각뿐이어서 오히려 집중이 잘 됐다. 아무리 내가 하기 싫은 게 있어도 하기 싫은 것 중에 내가 가장 할 수 있는 걸 더 찾게 되는 연습이 됐다.” - 8학년 한정우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모르던 남이 생각하는 내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고, 생각한 것과는 다른 답변들도 나와서 신기했다. ...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나름대로 그동안 성장한 것들도 분명 있다. 생각해보면 1년 전과 1달 전 계속해서 놓치는 것도 있지만 부딪히며 성장하는 것도 있다고 본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마침과 새로운 시작을 하더라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그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앞으로도 새 출발 시점에 놓인 만큼 남은 시간도 더 많은 시도도 해보면서 지금보다 성장한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 7학년 이예령
글 | 자연(산학교 7,8,9학년 생활교사)
7~9학년 들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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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교 이야기
글쓰기는 쉽지 않다. 필요한 컨텐츠를 검색하고 소비하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다 보니,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이를 명료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글쓰기는 점차 귀찮고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영상과 이미지, 짧은 글로 빠르게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긴 글을 쓰는 일이란 지루한 수업을 듣는 일보다 고역일지도 모른다. 이 괴로운 일을 산학교 중등과정 학생들은 매일, 매 학기마다 하고 있다. 매일 자기 생활과 배움 내용을 기록하고, 학기가 끝나면 이 기록을 바탕으로 평가서를 작성한다. 산학교 학생들이 모두 글쓰기를 좋아할 리는 물론 없고, 간혹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조차도 나를 돌아보고 글로 정리해야 하는 이 과제를 즐거워하진 않는다. 다만 괴로움에 그치지 않고 이 과정에서 각자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글쓰기 과제 중 학생들이 가장 정성을 들이는 건 인터뷰 에세이다. 인터뷰 에세이란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을 말한다. 상반기, 하반기 각각 한편씩 쓰고, 7,8,9학년 학생, 교사 모두가 함께 모여 글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학생들은 인터뷰 에세이를 위해 마감 3주 전부터 고민을 시작한다. 매일 작성한 생활과 배움 기록을 읽어보고 에세이 주제와 인터뷰 대상자, 인터뷰 질문을 정한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 내가 가장 노력한 점, 달라진 점, 요즘 나의 고민 등을 생각해보면서 주제를 충분히 탐색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각자 의미있는 주제와 질문을 정할 수 있도록 개별 면담을 하며 도움을 준다. 주제와 질문이 솔직하고 구체적일수록 진심이 담긴 글이 나올 수 있기에, 인터뷰를 하기 전 충분히 자기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7~9학년 학생들의 인터뷰에세이 글 나눔 장면.
주제와 질문이 완성되면 각자 정한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고 약속을 잡아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 대상은 가족, 친구, 교사로 대부분 편하고 익숙한 관계이지만, 장난스럽지 않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절차와 태도를 갖출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인터뷰 에세이를 처음 쓰는 학생들에게는 이 또한 긴장되는 순간이다. 인터뷰 과정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생각한 자기 모습에 대해 듣게 되는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나는 답변을 듣는 것이 조금은 쑥스럽지만 좋기도 한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의 답변을 통해 자기 모습을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보고 고민하는 기회가 된다. 그렇기에 답변자의 역할을 할 때에는 상대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성껏 임해야 한다. 교사로서는 이 시간이 평소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잔소리가 아닌 방식으로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인터뷰를 모두 마치면, 이를 토대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질문과 답변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해준 답변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총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담을 것인지 구상하고, 이를 토대로 초안을 작성하면,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서로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글다듬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교사는 보다 진솔하고 정돈된 글을 쓸 수 있도록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여러 차례의 퇴고를 거듭하여 마침내 에세이가 완성되면, 학기 마무리를 함께 축하하는 자리에서 발표한다. 이미 여러번 읽어본 글인데도 학생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을 다해 낭송했을 때 새로운 감동과 울림이 있다. 에세이 낭송 후에 발표에 대한 소감이나 질문 시간을 갖는데, 한 사람의 성장을 축하하는 따뜻한 격려의 말들이 오간다. 쉽지 않은 과정을 해내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이 순간 때문에 학생들이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인터뷰 에세이를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김없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생들 각각이 정성껏 써 내려갈 이야기가 벌써 기대가 된다.
아산 느릅실 이동학습 때 쓴 에세이 발표 장면
“에세이를 막 쓰기 시작했을 땐 쓰기 싫었다. 그래도 나의 생각도 조금씩 쓰다 보니 어느새 처음보단 덜 쓰기 싫어졌다. 덜 쓰기 싫어진 순간부터는 나의 생각을 써나가면 된다는 생각뿐이어서 오히려 집중이 잘 됐다. 아무리 내가 하기 싫은 게 있어도 하기 싫은 것 중에 내가 가장 할 수 있는 걸 더 찾게 되는 연습이 됐다.” - 8학년 한정우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모르던 남이 생각하는 내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고, 생각한 것과는 다른 답변들도 나와서 신기했다. ...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나름대로 그동안 성장한 것들도 분명 있다. 생각해보면 1년 전과 1달 전 계속해서 놓치는 것도 있지만 부딪히며 성장하는 것도 있다고 본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마침과 새로운 시작을 하더라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그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앞으로도 새 출발 시점에 놓인 만큼 남은 시간도 더 많은 시도도 해보면서 지금보다 성장한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 7학년 이예령
글 | 자연(산학교 7,8,9학년 생활교사)
7~9학년 들살이